저도 처음엔 연금저축 계좌를 열어만 놓고 뭘 담아야 할지 몰라서 그냥 뒀습니다. 1억이 묶여 있는데 예금 이자만 받고 있는 구조였죠. 퇴직연금 수익률이 2%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바로 제 이야기였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아무것도 안 하면 나오는 수익률이라는 표현이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부동산은 달랐습니다. 매수하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한번 들어가면 자동으로 묶였습니다. 팔기 불편하니까 안 팔았고, 안 팔았으니까 올랐습니다. 연금 계좌가 그것과 같다는 걸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ISA와 연금저축, 어느 계좌부터 채워야 할까
계좌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CMA(Cash Management Account)는 현금을 보관하면서 이자를 받는 계좌입니다. 여기서 CMA란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수시입출금 계좌로, 은행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게 특징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2% 이상 나오는데, 은행 수시입출금 계좌의 0.1%와 비교하면 20배 차이입니다. 월급을 은행 계좌로 받되, 카드값과 고정지출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CMA로 옮기는게 첫 단계입니다.
저도 매달 월급날만 빼고 은행 계좌는 거의 비워둡니다. CMA에서 일봉리 이자를 받으면서 투자 시점을 기다리는 거죠. 이 돈을 보내는 1순위 계좌가 ISA(Individual Savings Account)입니다. ISA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라는 뜻으로, 서민의 재산 형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좌입니다. 쉽게 말해 3~5년 동안 목돈을 모으면서 투자할 수 있고, 만기 시 비과세 또는 분리과세 혜택을 받는 구조입니다.
ISA의 핵심은 손익통산입니다. 3년 이상 유지 후 해지하면 그동안의 모든 거래 내역을 합산해서 순수익을 계산합니다. 일반 계좌는 수익 날 때마다 15.4%를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ISA는 200만 원(서민형은 400만 원)까지 비과세이고 나머지도 9.9%만 냅니다(출처: 금융감독원). 1년에 2천만 원씩 최대 5년간 1억 원까지 넣을 수 있으니, 사회초년생이라면 ISA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실제로 월 투자금이 100만 원 이하라면 연금저축은 아직 열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초년생은 중소기업 세액감면이나 월세 세액공제만으로도 세금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ISA에 집중해서 목돈을 먼저 만드는게 현실적입니다.
연금저축과 IRP, 세액공제 한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법
대리과장급이 되면 연말정산이 달라집니다. 세금을 토해내는 경험을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이때부터 연금저축이 필요해집니다. 연금저축은 1년에 1,800만 원까지 넣을 수 있고, 이중 6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세액공제율은 연봉 5,500만 원 기준으로 넘으면 13.2%, 넘지 않으면 16.5%입니다. 월 50만 원씩 부으면 1년에 약 100만 원을 돌려받는 셈입니다(출처: 국세청).
여기서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가 추가됩니다. IRP는 퇴직연금 계좌인데, 용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뉩니다. 저축용 IRP는 연금저축처럼 내가 돈을 넣어서 세액공제를 받는 계좌입니다. 연금저축 600만 원을 채웠다면, IRP로 300만 원을 더 넣어서 총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퇴직용 IRP는 회사에서 퇴직금을 받을 때 사용하는 계좌입니다.
제 경험상 이 두 개는 분리해서 관리하는게 좋습니다. 퇴직금과 저축금을 한 계좌에 섞어두면 나중에 연금 수령할 때 순서가 꼬입니다. 퇴직금이 먼저 나오고 저축금이 나중에 나오는데, 저축금은 1년에 1,500만 원 이상 받으면 종합소득세 대상이 됩니다. 계좌를 분리해두면 퇴직금과 저축금을 동시에 수령 신청해도 한도를 따로 관리할 수 있어서 유리합니다.
연금저축의 진짜 장점은 과세이연입니다. 과세이연이란 세금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 계좌에서는 수익이 날 때마다 15.4%를 떼지만, 연금저축은 그 세금을 떼지 않고 계속 재투자할 수 있습니다. 복리 효과가 극대화되는 구조입니다. 55세 이후 연금으로 받을 때는 3.3~5.5%의 낮은 세율만 적용됩니다. 넣을 때 세액공제, 굴릴 때 과세이연, 받을 때 저율과세라는 3단 혜택이 모두 주어지는 계좌입니다.
ISA 만기 자금을 연금계좌로 전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ISA를 해지하고 나서 2개월 안에 연금저축이나 IRP로 넣으면, 해당 금액의 10%를 추가 세액공제 받을 수 있습니다. 최대 3천만 원까지 가능하니, ISA로 1억을 모았다면 그중 3천만 원을 연금계좌로 옮기는 방식으로 장기 자금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자산배분 포트폴리오, 7% 수익률을 만드는 조합
연금 계좌에 무엇을 담을지가 핵심입니다. 목표 수익률은 7%입니다. 7%보다 높게 잡으면 액티브 투자가 되고, 낮게 잡으면 예금이 됩니다. 7%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조합이 6대4 포트폴리오입니다. 6대4란 주식 60%, 채권 40%를 의미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기본값이고, 국민연금도 비슷한 비율로 운용해서 연평균 7~8%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주식 60%는 S&P 500 ETF로 채울 수 있습니다. 월 50만 원을 부는다면 30만 원어치를 S&P 500에 넣는 식입니다. 국내 주식을 선호한다면 코스피200이나 코스닥150 ETF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채권 40%는 미국 10년물 국채 ETF나 국내 종합채권 ETF로 구성합니다. 국내 채권은 3년물이 기본이고, 종합채권 ETF는 3~5년 듀레이션(Duration)의 채권을 모아놓은 상품입니다. 듀레이션이란 채권의 평균 회수기간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금리 변동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금액이 커지면 국가분산도 고려해야 합니다. 연봉만큼의 돈이 연금 계좌에 쌓였다면 목돈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S&P 500, 나스닥100, 코스피200, 코스닥150을 섞고, 신흥국 ETF까지 추가하는 방식입니다. 신흥국 ETF는 중국,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을 한번에 담을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커버드콜 ETF는 신중해야 합니다. 분배율이 30%를 넘는 상품도 있지만, 장기 수익률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버드콜이란 보유 주식에 대한 콜옵션을 매도해서 프리미엄을 받는 전략입니다. 쉽게 말해 미래의 상승분을 지금 당겨받는 구조인데, 주가가 급등하면 상승폭을 제한당하고 배당만 남습니다. 배당만 보고 들어갔다가 원금이 천천히 녹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65세 이후 연금 수령 시점에는 포트폴리오를 인컴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S&P 500 같은 성장주 ETF를 전부 팔고, 월배당 채권 ETF, 리츠, 배당주 커버드콜 등으로 바꿉니다. 이때는 배당 수익률 4~6%를 목표로 조합해서, 배당금만 뽑아 쓰면서 원금은 유지하거나 불리는 방식입니다. 자율형 수령 신청을 하면 배당금만큼만 출금할 수 있어서, 사적연금 한도(연 1,500만 원)에 걸리지 않고 오래 받을 수 있습니다.
월 50만 원씩 7%로 30년을 굴리면 3억이 넘는 돈이 됩니다. 여기에 국민연금 100만 원 중반대, 퇴직연금에서 나오는 배당 50만 원을 합치면 월 300만 원 이상의 연금 소득이 만들어집니다. 이게 바로 연금 3층 구조입니다. 1층은 국민연금, 2층은 퇴직연금, 3층은 개인연금(연금저축+IRP)입니다. 미국의 401(k) 제도처럼, 우리도 이제 제도적 틀이 갖춰졌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정리하면, 초년생은 ISA로 시작해서 목돈을 만들고, 대리과장급부터 연금저축과 IRP로 세액공제를 챙기며, 연봉만큼 모이면 국가분산 포트폴리오로 확장하는 흐름입니다. 월급이 오를 때마다 투자금도 함께 올려서 평균 50만 원을 유지하면, 30년 후 노후 빈곤은 해결됩니다. 부동산을 못 팔아서 버텼던 것처럼, 연금은 못 빼게 묶어서 버티는 구조입니다. 불편함이 설계에 포함된 것이고, 그 불편함이 오히려 우리를 지켜줍니다.